《시간을 파는 가게》

1장. 오래된 골목, 그리고 간판 하나
도시는 오늘도 바빴다.
사람들은 시계를 보며 걷고, 휴대폰을 보며 밥을 먹고, 미래를 걱정하며 잠에 들었다.
누구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랬다.
출근길엔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고개를 떨구었고, 회사에선 말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닌 자동응답처럼 느껴졌고,
이따금 울리는 카톡 알림 소리는 업무인지 사생활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그날도 그는 평소처럼 일찍 출근했고, 밤늦게 퇴근했다.
커피는 벌써 다섯 잔째였고, 점심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회의 중 누군가의 말이 들리지 않아 핀잔을 들었고, 퇴근 직전엔 “좀 더 분발하자”는 상사의 말이 잔잔한 독처럼 퍼졌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노트북을 닫고, 조용히 사직서를 올렸다.
감정도, 미련도 없었다.
남은 건 단 하나, 깊고 무거운 피로감뿐이었다.
지하철 대신 걷기로 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이대로 어딘가 멀어지고 싶었다.
하루치의 피로가 발끝에 묻은 채, 도시의 길을 무의식적으로 밟아 나갔다.
그러던 중—
어딘가에서 바람이 스쳤다.
아스팔트 냄새 속에 섞여 들어온 풀냄새 같은, 이상할 만큼 낯익은 공기였다.
그는 문득, 잊고 있던 어떤 풍경을 떠올렸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 근처의 들판.
해 질 무렵이면 아이들 다섯이 모였다.
누구는 두건을 쓰고, 누구는 종이칼을 들고,
우리는 독수리 오형제였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길,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웃어대던 얼굴들.
손엔 장난감이었지만, 마음만은 진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었다.
그 시간은—
짧고, 투명하고, 무한했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다들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건, 고요한 정적.
그리고 문득 눈앞에 낯선 골목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좁고 눅눅한 그 골목 안,
낡은 간판 하나가 나지막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시간을 팝니다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
마치 누군가의 손때로 빛바랜 책 표지처럼, 오래되고도 묘하게 정겨운 느낌이었다.
가게는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시계가 '째깍째깍' 울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지금까지 흘러간 시간들, 그 속에서 닳아버린 감정들이 잠시 그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문은—
그가 손을 대기도 전에,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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