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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가게》 #2

Billcorea 2025. 4. 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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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가게》

2장. 기억의 값, 시간의 무게

시간가게2.

 

문이 열리자,
그는 마치 오래된 시계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은 높고, 벽면엔 온갖 크기의 시계들이 걸려 있었다.
벽시계, 괘종시계, 회중시계, 심지어 모래시계까지.
모두 다른 속도로, 다른 박자로 ‘째깍’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겹쳐져,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가게 안은 따뜻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밖과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주인공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그 얼굴에서는 늙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오랜 세월을 보아온 듯한 눈,
침묵에 익숙한 사람 특유의 고요한 기운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놀랍도록 익숙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잠시 말을 잊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여기가, 진짜로... 시간을 파는 곳인가요?”
라고 묻고 말았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필요하신 시간이 있으신가요?
지우고 싶은 순간이든, 되돌리고 싶은 날이든.”

그는 잠시 말이 막혔다.
이상했다.
이 공간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비밀을 말해도, 눈물을 흘려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

“...그냥, 하루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릴 적처럼,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고, 웃고...
그런 하루.”

주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단, 대가가 필요합니다.

주인공은 긴장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대가요?”

주인은 오래된 서랍을 열고,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겉표지는 **‘기억 목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을 얻기 위해선, 그 시간을 채운 기억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합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 잊고 싶은 감정...
대신, 당신이 원하시는 시간만큼의 대가가 됩니다.”

주인공은 책을 바라보았다.
책장 하나를 넘기자,
그 속에는 자신이 겪은 기억들이—어느 날, 어느 장소, 어떤 감정—
마치 정리된 기록처럼 적혀 있었다.

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억,
심지어 자신조차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까지.

그 중 한 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1996년 봄. 7살.
동네 끝 골목에서, 처음 만난 아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켠에서 묻어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기억은 오래되었지만, 따뜻한 감촉처럼 되살아났다.


그날,
햇살이 조금 눈부셨고,
그는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며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낯선 아이가 철문 앞에 서 있었다.
긴 머리, 수줍은 눈빛.
둘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너, 여기 살아?”
“…응.”
짧고 어색한 첫 인사.

하지만 이상하게,
그 날 이후로 그 골목은 항상 두 사람의 비밀 장소가 되었다.

함께 돌멩이를 차며 놀고,
딱지를 나눠 갖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다.

그 친구는 이름보다
늘 웃던 눈, 따뜻한 손, 그리고
말없이 손을 내밀던 그 순간들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이사 갔어."
엄마는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언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며 얼굴도 희미해졌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졌지만,
이상하게 그 기억은 마음 어딘가에서 항상 빛나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주인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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