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가게》
3장. 대가를 묻는 자
책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는 한 장, 또 한 장을 넘겼다.
수많은 기억들이 흘러갔다.
그 중 일부는 지우고 싶을 만큼 쓰라렸고,
어떤 건 너무 평범해서 지나쳤다.
하지만—
그 아이와의 기억만은 손끝이 멈췄다.
동네 끝 골목, 어색한 첫 만남.
그 후로 이어진 짧고도 깊은 유년.
그는 페이지를 쓸어내리듯 쓰다듬었다.
그 기억만큼은 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가 고단하고,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숨 막히고,
매일이 지친 반복이 될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던 작은 평화의 섬.
“이 기억을, 없앨 수 있다면…”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 느껴지게 되는 건가요?
이 골목, 그날의 햇살, 그 아이의 목소리까지… 다?”
주인은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신 안에서 사라집니다.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되지요.
그 자리는 새로운 시간이 대신 채워질 테고요.”
“…그럼, 난 하루를 되돌릴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햇살이나 쬐는… 그런 하루.”
“네. 원하신다면.”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결국 책을 덮었다.
“아니요. 이건 안 될 것 같아요.
이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내가 아닐 것 같아서.”
조용한 정적.
주인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한 마디를 꺼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한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제안이요?”
“기억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그는 말을 잠시 끊고,
서랍 안쪽에서 낡은 모래시계 하나를 꺼냈다.
그 안의 모래는 아주 천천히, 거의 멈춰있는 듯 떨어지고 있었다.
“이 선택은 더 큰 대가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하나를 희생해야 합니다.
물건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어떻게 알죠? 그게 뭔지?”
주인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건 시간의 문턱을 넘는 순간, 스스로 떠오르게 되어 있지요.”
그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손을 모래시계 위에 얹었다.
유리 너머의 모래가
그의 손길에 반응하듯,
잠깐, 멈췄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미 선택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주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이 문을 열면, 되돌릴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질 겁니다.
다만, 돌아올 땐
지금의 당신이 소중히 여긴 무언가가
당신 손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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