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가게》

4장. 돌아온 하루
눈을 뜬 순간—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햇살은 부드럽고,
창문 밖으론 고양이 울음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휴대폰도, 회사 메신저도, 회의 알림도 없었다.
모든 게 멈춰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모든 게… 돌아가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건 지금 그의 방이 아니었다.
묘하게 낯익고, 오래된 구조의 작은 방.
벽엔 그가 어릴 적 좋아하던 로봇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서랍 속엔 세월이 덮은 색연필과 딱지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거울을 보았다.
자신은 여전히 지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상은—1996년의 어느 봄날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마당으로 나갔다.
햇빛이 따뜻하게 뺨을 쓸고 지나갔다.
그리운 흙냄새.
옆집 아주머니가 부르는 개 짖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소리.
딱, 그 소리.
“…그 아이?”
그는 발길을 따라 골목길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
시간 속에 묻혀 있던 그 장면이 다시 펼쳐졌다.
철문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
긴 머리, 수줍은 눈빛.
그는 너무 놀라서 말을 잊었다.
“...안녕.”
그 아이가 말했다.
그 순간, 그는 어린 자신이 아니라
지금의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 속 그 목소리, 그 표정.
정확히, 그대로였다.
그는 웃음과 눈물이 섞인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
그 하루는 마치 기적 같았다.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작은 비밀기지를 만들어 웃던 하루.
그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이 시간이 기억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하루는 너무 완벽했다.
다시 살아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하루를 다시 산다면,
잃게 될 것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그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도 볼 수 있어?”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멨고, 마음이 흔들렸다.
왜냐면—
내일은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해가 완전히 지자,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어두운 가게 안,
그는 눈을 떴다.
모래시계가 멈춰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은 말없이 서 있었다.
눈빛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잃었죠?”
그가 물었다.
주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건 당신만이 알게 될 겁니다.
곧, 아주 가까운 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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